
안녕하세요. 아재놀이터입니다.
최근 정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의 첫 단추로 부산대, 전남대, 충남대 3곳을 선정하고 5년간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교당 연 700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지원과 함께 지자체와 지역 대학가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지만, 입시 현장과 대중의 시선은 냉담하기만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20년간 “지방대를 서울대처럼 만들겠다”는 수많은 구호와 수조 원의 예산이 공중분해 되는 과정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1. 데자뷔인가: 20년간 반복된 '지방대 육성 정책'의 잔혹사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사실 완전히 새로운 구상이 아닙니다. 역대 정권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지거국을 살려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정책은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추진되어 왔습니다.
- 노무현 정부의 ‘NURI(누리) 사업’: ‘지방대 육성을 통한 균형발전’을 내걸고 수천억 원의 예산을 지방대에 직접 투입했습니다.
- 박근혜 정부의 ‘지방대 육성법’과 ‘CK 사업’: 법안까지 제정하며 지방대 특성화에 매년 1,000억 원 이상을 집행했습니다.
- 문재인 정부의 ‘지거국 집중 육성’과 ‘RIS 사업’: “지거국을 서울대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만들겠다”며 국립대 재정 지원을 대폭 늘렸습니다.
- 윤석열 정부의 ‘글로컬대학 30’: 대학당 5년간 1,000억 원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구조개혁을 유도했습니다.
문제는 수조 원의 혈세가 투입된 지난 20년 동안, ‘인서울 열풍’과 대학 서열화는 오르면 올랐지 단 한 번도 완화된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과거에는 연·고대와 어깨를 견주던 부산대·경북대 등 대표 지거국들의 입결마저 지속적으로 하락해, 이제는 ‘인서울 중위권(건·동·홍·숭·국·세)’ 라인과 비교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2. 이번 정책이 던지는 구체적 시사점
그럼에도 이번 발표가 기존 정책들과 구분되는 몇 가지 차별점은 존재합니다.
- ‘이름만 국립대’가 아닌 ‘실용 융합 단과대’ 집중: 단순 인프라 확충을 넘어 ‘혁신제조융합(부산대)’, ‘첨단반도체·에너지(전남대)’, ‘NEXUS 과학기술(충남대)’ 등 기업 연계형 첨단 학부와 AI 융합원에 예산을 올인합니다.
- 9개 부처 총동원형 지산학(地産學) 모델: 교육부 홀로 치르는 사업이 아닌 산업부, 과기정통부, 국토부 등 9개 부처가 협력하여 대덕특구, 서남권 반도체, 동남권 AX 등 지역 산업 정책과 대학 교육을 직접 꺾어 잇겠다는 구조입니다.

3. 냉정한 현실 평가: 왜 '진짜 서울대'가 될 수 없는가?
역사적 경험과 현재의 구조를 종합해 볼 때, 이 정책이 ‘서울대급 대학 10개’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zero에 가깝습니다.
- 예산의 압도적 체급 차이: 이번 사업으로 지원되는 금액은 교당 연간 약 700억 원 수준입니다. 가뭄의 단비 같지만, 서울대학교 한 해 예산(약 1조 6천억~1조 7천억 원)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연 700억 지원으로 서울대 수준의 세계적 교수진과 연구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 대학이 아닌 ‘일자리와 정주 여건’의 문제: 학생들이 서울대에 열광하는 핵심 원인은 대학 브랜드 그 자체보다 ‘수도권에 집중된 고소득 대기업 일자리와 문화적 인프라’ 때문입니다. 졸업 후 일할 수 있는 앵커 기업이 지역에 정착하지 않는 한, 대학에 아무리 돈을 부어도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상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 정권에 따라 흔들리는 정책 연속성의 부재: 5년짜리 재정 지원 사업이 끝난 뒤에도 이 지원이 유지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대학의 체질과 입시 지형이 바뀌려면 최소 10~20년의 지속성이 필요한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간판만 바꿔 달았던 과거의 잔혹사가 반복될 위험이 큽니다.

4. 총평: '서울대 만들기'라는 정무적 수식어를 버려야 산다
정부는 수십 년간 실패했던 ‘서울대 복사판 만들기’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부산대, 전남대, 충남대는 서울대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서울대 10개’라는 거창한 구호를 버리고, “수도권 대기업에 못지않은 연봉과 연구 환경을 제공하는 강력한 지역 특화 학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서울대 버리고 부산대 간다”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어설픈 인서울 하위권 대학에 갈 바에는 확실한 취업과 지원이 보장되는 충남대·전남대 특화 학과에 가겠다”는 실용적 수험생들을 끌어모으는 것, 그것이 20년 만에 잔혹사를 끊어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결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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